이탈리아 친퀘테레, 절벽 마을 다섯 곳을 잇는 해안 기차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해안에는 절벽에 매달리듯 자리한 작은 마을 다섯 개가 있습니다. 친퀘테레라고 부르는 이 다섯 마을은 자동차로 들어가기 어렵고,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기차로 다닙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짧은 해안 노선이 곧 이 지역 여행의 동맥이고, 차창의 풍경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색감을 보여 줍니다. 좁은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마다 절벽 아래 작은 항구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짧은 풍경이 다섯 번 반복되는 노선이라고 표현해도 어울립니다.
저는 라스페치아에서 이 노선을 처음 탔습니다. 작은 역에서 빨강과 노랑이 섞인 짧은 열차에 올라타자, 출발 십 분 만에 첫 마을 리오마조레에 닿았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절벽 아래 좁은 항구가 펼쳐졌고, 파스텔색 집들이 바위 면에 들러붙어 있는 듯한 풍경을 처음 마주한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다섯 마을과 노선의 구조
친퀘테레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남쪽에서 북쪽 순서로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알 마레가 이어집니다. 다섯 마을이 모두 차로 닿기 어려운 위치에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는 절벽과 좁은 산길로 막혀 있어 도보 등산로와 기차가 거의 유일한 이동 수단입니다.
이 다섯 마을과 주변 해안, 산비탈은 함께 묶여 친퀘테레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포함된 지역입니다. 풍경뿐 아니라 절벽 비탈에 만들어진 계단식 농경지와 마을의 전통 어업 문화까지 보존 대상에 들어 있어, 자동차 도로를 새로 내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친퀘테레 익스프레스의 기본
다섯 마을을 잇는 기차는 친퀘테레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의 지역 열차입니다. 남쪽 거점 도시 라스페치아 첸트랄레역에서 출발해, 다섯 마을을 차례로 거쳐 북쪽 레반토까지 갑니다. 운행 시즌인 봄부터 가을까지는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자주 다녀, 시간표에 너무 매이지 않고 다니기 좋습니다. 전 구간이 짧아 라스페치아에서 레반토까지 전부 타도 한 시간 남짓 걸립니다.
친퀘테레 카드의 활용
이 노선만 따로 이용한다면 일반 단거리 표를 구간별로 사도 무방하지만, 다섯 마을을 모두 도는 일정이라면 친퀘테레 트레노 카드가 훨씬 유리합니다. 카드 하나로 운행 시간 안에는 무제한으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일부 산책로 입장도 함께 처리됩니다. 1일권부터 며칠짜리까지 있으니 일정 길이에 맞춰 고르면 됩니다.
마을별 특징과 어울리는 시간대
다섯 마을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위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같은 날 다 도는 분도 있는데, 한 마을에서 한두 시간씩만 머물러도 인상이 또렷이 남는 곳입니다.
리오마조레
남쪽 첫 마을입니다. 좁은 길과 알록달록한 집, 그리고 작은 항구가 핵심입니다. 항구 쪽 바위에 올라 마을 전체를 한눈에 담는 사진이 가장 유명한데, 해 질 무렵에 가면 빛이 부드러워 사진이 잘 나옵니다. 아침에 시작하는 일정이라면 마지막에 이 마을을 두고 노을과 함께 머무는 흐름이 좋습니다.
마나롤라
친퀘테레 사진 중 가장 많이 도는 풍경이 마나롤라 마을 전체를 측면에서 잡은 사진입니다. 바다 위로 절벽이 솟고, 그 절벽에 파스텔 집들이 차곡차곡 박혀 있는 구도입니다. 마을 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잠깐 걸어 올라가면 그 사진의 시점에 닿습니다. 점심 식당이 모여 있는 마을이라, 한낮에 들러 가볍게 식사를 하고 떠나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코르닐리아
다섯 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와 직접 닿지 않은 마을입니다. 절벽 위 평지에 자리 잡고 있어, 역에서 내리면 약 380개의 계단을 오르거나 셔틀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만큼 사람이 덜 붐비고, 골목 분위기가 더 한적합니다. 다른 마을이 바다 가까이에서 활기찬 반면, 코르닐리아는 조용한 휴식 시간을 끼워 넣기 좋은 곳입니다.
베르나차
가장 그림 같은 마을이라는 평을 듣는 곳입니다. 작은 항구를 둘러싼 광장에 식당과 카페가 있고, 위로는 11세기 성탑이 솟아 있습니다. 짧은 산책로를 따라 마을 옆 언덕에 오르면 항구를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베르나차 전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친퀘테레 일정에서 한 끼를 제대로 먹고 머무는 마을로 가장 자주 꼽힙니다. 항구 광장의 식당에 자리를 잡고 해산물 파스타 한 접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정은, 짧은 여행이라도 충분히 권할 만한 시간입니다.
베르나차의 좁은 골목들
광장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 여럿 나옵니다. 빨래가 걸린 창문과 작은 가게, 그리고 골목 끝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바다의 한 조각이 이 마을의 인상을 만듭니다. 사진가들이 일부러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 셔터를 누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몬테로소 알 마레
북쪽 끝 마을입니다. 다섯 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모래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어, 한여름이라면 수영복을 챙겨 가도 좋습니다. 옛 마을과 새 마을이 작은 곶으로 갈리는데, 분위기가 가장 활기차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친퀘테레에서 하루 더 머문다면 몬테로소를 거점으로 잡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큰 호텔과 식당이 모여 있어 여행자 친화적이고, 가족 단위 여행자에게도 무리가 적은 마을입니다.
차창과 산책로, 두 가지 시점
친퀘테레의 풍경은 기차 안에서만 봐서는 절반밖에 못 봅니다. 노선이 대부분 터널을 통과하고, 각 역에서만 잠깐 바다를 만나는 구조라, 마을과 마을 사이의 절벽 풍경은 별도의 산책로에서 보게 됩니다.
센티에로 아추로, 푸른 산책로
다섯 마을을 잇는 해안 산책로의 정식 이름이 센티에로 아추로입니다. 짧은 구간씩 끊어져 있고, 일부 구간은 산사태로 폐쇄되기도 합니다. 가장 유명한 구간이 리오마조레와 마나롤라를 잇는 비아 델라모레라는 짧은 길인데, 절벽에 매달린 듯한 산책로 위로 바다 풍경이 펼쳐집니다. 운영 상태가 자주 바뀌니, 가기 전 마을 입구의 공원 안내소에서 그날의 개방 상황을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등산로와 포도밭
본격적인 등산을 즐기는 분이라면 해안 산책로 대신 능선 등산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을 위쪽 능선에는 옛 농민들이 다니던 길이 남아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으면 계단식 포도밭과 올리브밭 사이를 지나갑니다. 이 일대 포도로 만드는 친퀘테레 와인과 디저트 와인 샤케트라가 유명한데, 산책 중 만나는 농장 매점에서 한 잔씩 맛볼 수 있습니다. 가파른 비탈에 일일이 돌을 쌓아 만든 계단식 농경지는, 수백 년 동안 이 지역 사람들이 손으로 만들어 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해산물과 페스토 제노베제
친퀘테레 식당의 메뉴는 단순하지만 인상이 깊습니다. 바다에서 갓 잡은 멸치 튀김, 홍합찜, 그리고 페스토 제노베제가 들어간 트로페 파스타가 자주 등장합니다. 페스토 제노베제는 인근 제노바 지방에서 시작된 소스인데, 이 일대에서 자란 향이 강한 바질이 핵심입니다. 작은 어선에서 매일 잡아오는 해산물과 이 소스가 어우러지는 식사는 이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입니다.
등산로 이용 시 주의점
여름 한낮에는 그늘이 거의 없는 능선 길이라 직사광선이 강합니다. 모자와 물은 필수이고, 해 질 무렵까지 너무 멀리 가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입장 단계에서 입장료를 받는 구간이 있어, 친퀘테레 카드를 미리 준비해 두면 매번 표를 끊지 않아도 됩니다.
거점 도시 라스페치아와 레반토
다섯 마을 자체는 숙박 시설이 한정적이고 가격도 높은 편입니다. 거점 도시를 잡는다면 남쪽의 라스페치아나 북쪽의 레반토가 합리적인 선택지입니다.
라스페치아를 거점으로 잡는 경우
라스페치아는 리구리아의 큰 항구 도시로, 호텔과 식당이 풍부하고 다섯 마을로 들어가는 친퀘테레 익스프레스의 시작점입니다. 피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고, 로마와 피렌체에서도 직통 열차로 한 번에 닿습니다. 첫 일정으로 친퀘테레를 도는 분께 권하는 거점입니다.
레반토의 분위기
레반토는 다섯 마을의 북쪽에 자리한 작은 휴양 도시입니다. 모래 해변이 길게 있어 한여름 휴양에 잘 맞고, 도시 자체가 조용해 다섯 마을에서 돌아온 뒤 쉬어가기 좋습니다. 두 도시를 비교해 본다면, 활기찬 분위기를 원하면 라스페치아, 조용한 휴식을 원하면 레반토 쪽이 어울립니다. 자전거 도로가 잘 깔려 있어, 인근 보네솔라까지 옛 철도 터널을 활용한 자전거 길을 따라 산책 삼아 다녀오는 일정도 가능합니다.
피사와 제노바, 양쪽 거점 도시
라스페치아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을 더 가면 피사가 있습니다. 사탑과 광장을 둘러본 뒤 친퀘테레로 들어오는 흐름이 자연스럽고, 비행기로 도착한 첫날 일정으로도 잘 맞습니다. 반대로 북쪽 제노바는 옛 항구와 좁은 골목, 그리고 페스토 제노베제의 본고장이라는 매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친퀘테레에서 제노바로 빠지는 일정은 리구리아 해안의 색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줍니다.
실용 정보와 일정 짜기
친퀘테레 일정의 일반적인 길이는 하루에서 사흘 정도입니다. 짧게 가는 분은 라스페치아에서 출발해 다섯 마을을 다 거치고 같은 날 돌아옵니다. 이틀 일정이라면 등산로와 식사를 더 여유 있게 묶을 수 있고, 사흘 이상이면 한 마을에 머물며 천천히 느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피해야 할 시간대
여름 한낮의 마을 항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가능하다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마을을 도는 편이 좋습니다. 친퀘테레 익스프레스의 첫차는 새벽 5시 반쯤 라스페치아에서 출발하니, 사진을 진지하게 찍을 계획이라면 첫차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다른 노선과 묶기
이탈리아는 도시와 도시 사이가 고속 열차로 촘촘히 이어져 있어, 친퀘테레 한 곳만 가기 아쉽다는 분이 많습니다. 피렌체와 피사를 거쳐 친퀘테레로 들어왔다 다시 밀라노로 이동하는 흐름이 일반적이고, 좀 더 길게는 친퀘테레에서 제노바를 거쳐 코트다쥐르 해안으로 빠지는 일정도 자연스럽습니다. 노선을 묶는 일반적인 방법은 유럽 철도 패스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여행을 마치며
친퀘테레는 작은 마을 다섯 곳이지만, 풍경의 밀도가 워낙 높아 한 번 다녀오면 오래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같은 노선을 다시 타도 마을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시즌과 시간대에 따라 차창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처음 가는 분이라면 다섯 마을을 다 도는 일정으로 시작해 보시고, 두 번째 방문이라면 한 마을에 며칠씩 머물며 골목과 항구를 천천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다섯 마을은 단순히 사진 좋은 장소가 아니라, 절벽에 매달려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간입니다. 계단식 농경지와 좁은 골목, 항구의 작은 어선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어느 한 부분이 빠져도 같은 느낌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빠르게 도는 일정에서도 한 번씩은 천천히 걸어 보시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같은 이탈리아 안에서 다른 풍경 노선을 찾는 분이라면 스위스 빙하특급 가이드가 좋은 비교 자료가 됩니다. 산악 노선과 해안 노선이 보여 주는 차창의 색감이 얼마나 다른지를 함께 느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