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키운 카지노 도시들, 선로가 놓은 도시의 시작
도박으로 이름난 도시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점에 거의 예외 없이 철도가 놓여 있습니다. 카지노가 먼저 있어서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라, 철길이 사람을 실어 나르며 도시가 자라고 그 위에 도박 산업이 얹힌 순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도박 도시의 진짜 출발점은 도박장이 아니라 역과 선로였던 셈입니다. 철도가 어떻게 이 도시들의 토대를 놓았는지, 교통과 도시의 역사를 따라가 봅니다.
철도가 도시를 만든다는 것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먼 거리를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물자를 옮길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철도뿐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보급되기 전이었고 항공은 더 먼 훗날의 일이었으니, 철길이 닿느냐 닿지 않느냐가 한 마을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선로가 지나는 곳에는 역이 서고, 역 둘레로 숙소와 식당, 상점이 모이며 사람의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모이는 길목에는 자연스럽게 유흥이 따라붙었습니다. 멀리서 온 여행자와 노동자가 잠시 머무는 곳에는 술집과 놀이판이 생겨났고, 그 가운데 일부가 훗날 거대한 도박 도시로 자라났습니다. 철길이 닿은 뒤에야 비로소 외지의 자본과 사람이 한곳으로 흘러들었고, 그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며 작은 놀이판이 큰 산업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왜 하필 철도가 도박을 불렀을까
철도와 도박이 유난히 자주 겹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도박이 사람이 한자리에 충분히 모여야만 굴러가는 산업이라는 점입니다. 판이 커지려면 돈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동차와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 그만한 인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단은 철도가 유일했습니다. 그래서 큰 도박장은 거의 언제나 철도가 닿는 길목에 섰습니다.
둘째 이유는 법과 지리에 있습니다. 도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금지되거나 엄격히 규제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수록 규제가 닿지 않는 길목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길목이 마침 철도가 지나는 분기점이나 경계 지대인 경우가 흔했습니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규제가 느슨한 쪽으로 이동해 판을 벌였고, 그 자리에 도박장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뒤에 살펴볼 레일로드 패스가 바로 이 구도를 그대로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셋째는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경제입니다. 환승을 기다리거나 하룻밤 묵어 가는 여행자, 멀리서 온 노동자가 시간을 보낼 곳을 찾으면서 술집과 놀이판이 들어섰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능력과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는 길목, 그리고 머무는 동안의 소비가 한데 겹친 곳에서 도박 도시가 싹텄습니다. 철도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거의 유일한 장치였습니다.
리노, 선로를 따라 생긴 거점
미국 네바다의 리노는 철도와 도박의 연결을 잘 보여 주는 초기 사례입니다. 1868년 센트럴 퍼시픽 철도가 지금의 리노 도심을 가로질러 선로를 놓으면서, 이 일대는 인근 광산 지대를 오가는 개척자와 광부, 한탕을 노리는 이들의 안식처로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광맥을 좇아 몰려든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길목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곳이었던 만큼, 카드놀이와 주사위를 비롯한 놀이판이 일찍부터 성행했습니다. 도박이 정식으로 합법화되기 한참 전이었고 단속이 들이닥치기도 했지만, 음지에서는 주민과 심지어 보안관까지 판에 끼어들 만큼 도박이 일상에 깊이 스며 있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가 떠오르기 훨씬 전부터 리노가 이미 도박의 도시로 이름났던 배경에는 이 철도가 만든 인구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사막의 정차역에서
오늘날 도박 도시의 대명사가 된 라스베이거스도 시작은 한적한 철도역이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와 솔트레이크시티를 잇는 철도가 사막을 가로지르며 중간 분기점을 필요로 했는데, 마침 지하수가 솟아 물을 얻기 좋았던 이 자리가 급수와 휴식의 정차역으로 낙점됐습니다. 1905년 5월 15일, 철도 회사가 이곳의 땅을 경매에 부치면서 도시가 공식적으로 출발했습니다.
즉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을 위해 세워진 도시가 아니라, 철도의 분기점이자 사막의 쉼터로 태어난 마을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음성적인 도박과 유흥 탓에 죄악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도박이 도시의 중심 산업으로 떠오른 것은 1931년 네바다가 도박을 합법화한 뒤의 일입니다. 철도가 깔아 둔 마을이라는 토대가 없었다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런 도약이 일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과 철도라는 두 조건이 겹친 입지는 그만큼 결정적이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던 첫 단추가 철길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도시를 탄생시킨 철도의 내력은 네바다 역사 기록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레일로드 패스, 이름에 철도가 담긴 곳
네바다에는 이름 자체에 철도가 새겨진 카지노가 있습니다. 레일로드 패스라는 이곳은 후버댐 건설 현장으로 향하는 철길이 지나던 고갯길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유니언 퍼시픽 철도가 댐 공사에 쓸 자재를 나르려 이 고개에 선로를 놓았고,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철도가 처음 실어 나른 화물이 바로 이 카지노의 전신을 짓기 위한 목재였다고 합니다.
1931년 네바다가 도박을 합법화한 직후 문을 연 이곳은 네바다에서 네 번째로 영업 허가를 받았고, 지금도 운영되는 가장 오래된 카지노로 꼽힙니다. 당시 인근 볼더시티는 댐을 짓기 위해 만든 계획도시라 술과 도박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일을 마친 인부들이 규제가 없는 이 길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규제가 닿지 않는 철도 길목에 도박장이 선다는 앞서의 구도가 한 건물의 이름과 위치에 그대로 새겨진 셈입니다. 이곳의 내력은 레일로드 패스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몬테카를로, 철도가 불러들인 손님들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모나코의 몬테카를로가 대표적입니다. 바닷가 절벽에 자리한 이 카지노는 한동안 손님이 적어 어려움을 겪었는데, 1868년 니스 방면에서 철도가 연결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프랑스와 그 너머에서 부유한 여행자들이 기차를 타고 손쉽게 닿을 수 있게 되자 방문객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운영을 맡은 프랑수아 블랑은 독일의 도박장에서 익힌 노하우로 유럽 귀족을 끌어들였고, 1860년대 말에는 카지노 수익만으로 모나코 주민의 세금을 없앨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면세 정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철도가 손님을 실어 나르고, 그 수익이 다시 도시의 재정을 떠받친 구조였던 셈입니다. 한 해 뒤에는 카지노 바로 아래에 몬테카를로 역이 따로 문을 열어, 기차에서 내리면 곧장 카지노로 이어졌습니다. 자리를 망친 손님이 재빨리 기차에 올라 떠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질 정도입니다. 당시 역의 위치는 몬테카를로 역의 역사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철도가 불러들인 번영은 건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파리 오페라극장을 설계한 샤를 가르니에가 카지노 건물을 맡아 1878년 화려한 벨에포크 양식으로 완성했고, 이 건물은 지금도 도시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몬테카를로가 기차로 닿는 우아한 여행지로 알려진 배경에는 이런 철도의 역사가 깔려 있습니다. 기차로 이 도시에 닿는 여정 자체가 궁금하다면 몬테카를로 기차 여행 편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사람을 모으는 길
리노와 라스베이거스, 레일로드 패스와 몬테카를로는 나라도 시대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닙니다. 모두 철길이 먼저 사람을 실어 나르고, 그 흐름 위에 도시와 산업이 자라났다는 점입니다. 도박은 이 도시들이 택한 여러 얼굴 가운데 하나였을 뿐, 도시를 처음 일으킨 힘은 언제나 교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들의 오래된 역사나 옛 사진을 들여다보면, 화려한 간판보다 먼저 철도역과 선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날 보이는 번쩍이는 풍경의 밑바닥에는 사람을 한곳으로 모아 준 철길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깔려 있습니다. 철길이 어떻게 사람과 도시를 이어 왔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기차로 떠나는 여행지들을 함께 둘러보며 교통이 빚어낸 도시결을비교해보세요